#폭설 "눈이 많이 오네." 창밖을 내다보던 승윤의 표정에 그늘이 진다. 나는 느적거리며 아직 온기가 넉넉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깨끗한 눈이 반사한 부신 빛에 승윤의 하얀 뒷목에 오소소 소름이 돋은 것이 보였다. 추위에 약한 주제에 옷도 안 걸치고 승윤은 한참이나 창가에 서서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밤새 온 거야?" "그런가봐." 어쩐지. 눈 오는 ...
700원짜리 미역국보다는 좋은 것을 먹겠다는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명쾌한 계획은 없었지만 뭘 하든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보단 낫겠지 싶었다. 대책없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다 예전에 승윤이와 함께 갔었던 디저트 가게를 떠올렸다. 번화가에서 약간 벗어난 카페 거리에 있는, 앙증맞은 사이즈의 무스 케이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가끔 아주 익숙했던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반가운 숙취였다. 한때는 매일 달고 살았던. 무거운 두통을 이고 몸을 일으키자 기다렸다는 듯이 베이가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안 돼, 하고 말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넣어 털을 쓸었다. 코끝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더니 금새 재채기가 난다. 에취, 하고 두 번이나 크게 소리를 내고서야 조심스레 ...
안녕하세요, 디오네입니다. 이사 후에 바로 올렸어야 했는데 공지가 다소 늦어졌네요. 일단 꼭 전달해야 하는 내용부터 정리해서 올리도록 할게요. 일단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전부 가져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장편을 제외한 단편들, 그 중에서도 진우 위주의 글들만 이곳으로 옮겨 왔습니다. 앞으로도 Fate no.4 포스타입 블로그는 진우 위주로 돌아갈...
모처럼만의 외근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일단 좋아하고 봤을 텐데, 오늘은 사정이 좀 달랐다. 스크린과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난방을 확인하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잘게 진동이 울렸다. 날이 날이니만큼 단톡방에서 별 영양가없는 수다가 오가고 있었다. 얼핏 보니 중간중간 상사의 안 좋은 소문과 누군가 연애를 시작한 것 같다는 가십도 함께 끼어 있는 듯했다. 이미 지...
베개 위로 귀엽게 솟은 머리. 부은 듯한 감긴 눈. 살짝 벌어진 도톰한 입술. 코끝에 걸린 선명한 점 하나. 고르게 퍼지는 나직한 숨소리. 찹찹. 핸드크림 바르는 소리에 공상에서 깨어난다. 익숙한 허브향이 코를 찌른다. 돌아보니 승윤이 손을 비비며 눈을 맞춘다. 나쁜 상상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뜨끔해진다. 며칠째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부산에 다녀온...
손이 무겁다. 됐다고 그렇게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결국 이 모양이다. 백화점 로고가 크게 적힌 대형 쇼핑백과 핑크색 보자기로 감싼 반찬통을 양손에 나눠 들고 힘들게 고속버스에 올랐다. 차를 사든지 해야지 진짜. 좋은 소리 못 듣고 집 나온 설움이 엉뚱한 곳에서 폭발한다. 다리 밑에 짐을 내려놓고 꽝꽝 언 손을 번갈아 비볐다. 빨리 손이 녹아야 승윤에게 연락...
좋은 아침. 외투에 앉은 눈가루를 폴폴 털어내며 습관처럼 외친다. 말과는 다르게 아침 날씨는 썩 좋은 것이 못 되었다.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으로 도로 사정이 말이 아닌데다 기온이 하락해 뼈가 시리도록 춥기까지 했다. 오늘 늦겠네. 옆자리를 보며 목도리를 푼다. 자리가 빈 책상 위엔 정체불명의 하얀 박스가 놓여 있었다. 무거운 것이 들었는지 톡 건드려도 ...
우리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난 후, 승윤은 두 번 다시 술 마시잔 얘길 하지 않았다. 아마도 본의 아니게 내게 민폐를 끼쳤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같이 저녁 먹자고 먼저 말을 꺼내도 선약이 있다며 거절했다. 그렇게 선약을 핑계로 서둘러 퇴근한 승윤은 밤 늦게까지 혼자 술을 마셨다. 한번도 내게 직접적으로 고백한 적은 없었지만 아침마다 희미하게 풍겨오던 ...
매캐한 고기 타는 냄새가 머릿속을 채운다. 어찌나 독하고 매운지 찔끔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눈앞에서 아까운 고기가 새까만 숯이 되어가는데도 젓가락을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기를 보고 부리나케 달려온 아주머니는 혀를 차더니 검게 그을린 불판을 빼고 탄 고기를 빈 그릇에 와르르 쏟아부었다.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묻다 말고 아주머니는 인사불성이 ...
아 노랑노랑해.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어 배시시 웃음이 난다. 찌뿌드드한 어깨를 쫙 펴고 읏차 기지개도 켜본다. 헤어샵에 갇힌 지 다섯 시간 만에 바깥 공기를 쐬었다.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가슴 가득 숨을 들이마셨다가 하마터면 목구멍에 사포질을 할 뻔했다. 계절은 봄인데 공기는 봄이 아니다. 그럴싸해 보여도 도시의 봄은 보기보다 낭만이 적다. "일...
승윤이 찾아왔다. 승윤은 이 집에 꾸준히 드나드는 몇 안 되는 방문객 중 하나였다. 신선한 우유와 채소를 배달해주는 단골가게의 배달원을 제외하면 유일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승윤은 나의 개인 변호사 겸 재산관리인으로 매월 한 차례 정기적으로 저택을 방문했다. 변호사가 되기 전, 승윤은 이곳에서 집사로 일했다. 집사가 되기 전엔 말벗이었다. 요리사로 일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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