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금 볕이 든 창가에 뽀얀 먼지가 피어난다. 변색된 창틀 위로 방금 묻은 지문 자국이 선명하다. 며칠 청소를 걸렀더니 그새 먼지가 쌓였나. 창 너머 세상은 어제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오래된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엔 표정이 없다. 똑똑똑. 경건한 노크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네.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먼저 방 안으로 걸어들어온다....
요정. 최 상무가 보내준 메세지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일곱 살 이후론 써본 적 없는 말이었다. 요정이라니. 차를 몰고 가는 내내 팅커벨이나 세일러문 따위를 생각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서야 내 이해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으리으리한 한옥 건물 앞에서 내비게이션은 작동을 멈추었다. 높이 달린 현판엔 읽을 수 없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요정이라...
꽃에 향기가 있듯 돈에도 냄새가 있다. 오래된 밥집에서 건네받은 잔돈에는 눅진하고 꿉꿉한, 달큰하고 짭쪼름한 조미료 향이 풍겼다. 먹고 살기 위한 돈이다. 힘든 노동의 대가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갔을 꾸깃꾸깃한 지폐 몇 장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읽는다. 입 안에 남은 음식 냄새가 거슬려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뱃갑을 집어넣느라 팔을 움직이다 안주머니...
한밤의 암살자처럼, 지독한 냉기를 몰고 눈보라는 소리없이 휘몰아친다. 차가운 코끝을 비비며 이불을 걷는다. 돌아보니 옆자리가 비어 있다. 베개 밑에 손을 넣어 단도와 휴대폰을 한 손에 집었다. 칼날에 반사된 액정의 불빛이 아프게 눈을 찌른다. 오전 세 시 삼십 칠 분. 그리고 너는 없다. 맨살 위에 두터운 점퍼를 대강 걸치고 문을 열었다. 무방비 상태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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